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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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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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 26세에 결혼했다. 대학 졸업하고 3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대학교 4학년부터 결혼 준비한 셈이다. 번듯한 직장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했다. 혹시 혼전임신 한 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 첫째 딸은 결혼 2년 후 태어났다. 그럼 뭐 이리 빨리 결혼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말하는 건, 요즘 기준에서 빨랐을지는 몰라도 나는 빨리 결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더 일찍 나타났다면 사실 더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나중에 나타나서 그제야 결혼했을 뿐이었다. 번듯한 직장이 없었던 건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결혼 허락받는 데서 어려움을 줬다. 하지만 내가 20살 때부터 혼자 서울 올라와 부모님 도움 받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큰 점수가 되었다. 당신의 귀한 딸을 굶기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줬던 것 같다. 물론, 애초에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혼자 서울 올라왔을 때도 잘 헤쳐 나갔으니 우리 아내도 충분히 책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아내에게 먼저 결혼하자고 말할 수 있었고 성공적인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다 보면 더 많은 걸 가진 사람들처럼 갖춰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게 아닌 걸 진작 알았다. 내가 가진 게 얼마큼이든 그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또 그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결혼 생활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를 알아서 나는 불안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말한, 내 삶의 이 모든 방향성은 처음부터 갖췄던 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먼저 성공적인 결혼을 해온 어른들로부터 배운 거다. 결혼 생활이란 내 마음대로 혹은 내 나름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평생 배우고 양육 받아야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른들 중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을 결혼식의 주례자로 모셨다. 오늘날 청년들을 보면 어떤가. 애초에 결혼도 잘 안 하거니와 결혼하더라도 주례 없는 결혼식을 진행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청년들의 결혼 거부 현상과 그로 인한 저출산 문제가 과하다. 결혼하지 않는 게 멋진 선택이라는 의견에 비해, 결혼이 좋은 ‘선택’이라는 의견이 현저히 부족하다. 그나마 결혼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하는 건 못지않게 안타까운 일이다. 주례가 물론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례자가 부부에게 주는 양육은 결혼식에서만 하고 마는 게 아니다. 결혼 전부터도 그렇고 결혼 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비록 형식이더라도 인생 최고의 스승을 주례자로 모시고 가족 앞에서 주례 듣고 선언하며 결혼식 올리는 게 행복한 결혼 생활 위해 맞는 흐름이다. 과거에 자주 그랬듯 그저 사회적 지위 높은 사람을 주례자로 모시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물론, 오늘날 청년들이 결혼 거부하고 주례 없애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과거 문화대로 강요받듯 결혼하고서 불행하게 사는 선배 세대의 모습을 많이 보니 당연히 따라 가고 싶지 않고 조언도 받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 세대 중 과거의 잘못된 문화에 이끌리지 않고 모범적인 결혼 생활해 온 사람도 많다. 우리는 그런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멘토링과 조언을 구해야 한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친구나 동료의 조언은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결혼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도움 줄 수는 있지만 큰 방향성에서는 도움을 못 주는 경우가 많다. 이에 우리는 우리 삶과 결혼 생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선배 세대의 지혜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선배 세대의 지혜가 담긴 주례가 비록 재미없는 형식처럼 보이더라도, 주례라는 전통은 건전한 결혼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음 세대에게도 꼭 전해줘야 할 문화다.

2024-11-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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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며 보석을 찾는 사람들, 그러나 보석은 없다. 울퉁불퉁하고 못난 원석만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보석이 되기 위해 빚어져야 할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한 없이 부족한 원석일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의 완벽함 때문이어선 안 된다. 단지 그 사람과 함께 걷고 싶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 걸음이 남들보다 뒤에서 걷더라도, 혹은 천천히 걷더라도 말이다. 그 걸음의 방향 또한 중요하다. 이상형을 그리며 계산 요소만 늘어나는 사람들의 머릿속,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원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리고 계산이 아닌 '분별'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 자신의 계산에 들어맞는가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아닌, 진정한 아름다움을 분별하여 볼 줄 아는 지혜 말이다. 지금 부족한 것? 괜찮다. 아니, 나와 당신은 영원히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또 그 방향을 향해 어떻게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은 영원히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이다. 틀어질 때마다 바로잡고 또 걷고, 넘어지고 또 바로잡고 걷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석인 나와 당신은 조금씩 빚어져 보석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석으로 빚어져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즐거운 일이 된다. 한 없이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 두 울퉁불퉁한 원석이 만나 함께 보석으로 빚어져 가는 과정,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2024-11-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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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의 '비혼 출산'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들, 웬 아저씨인 이상민 보고 "아빠"라 했다. 사유리는 아들이 애초에 아버지가 없으니 상처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아들은 어디선가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아들은 평소에도 사유리에게 "왜 나는 아빠가 없냐, 보고싶다"고 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사유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기왕에 태어난 아들이 잘 자랐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기에 어떻게 자랄지 걱정이 많이 된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거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셔도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아버지로부터의 상처가 큰 누군가는 "아빠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은 각기 나름대로 매우 중요하다. 자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런 중에 때로는 아이를 위해서 주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고 하는 아버지의 단호함,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피땀 흘려 일하는 아버지의 책임감, 그 뒤에서 잠 못 자면서까지 아이를 편하게 만들어주려는 어머니의 희생 등. "동성결혼 부부도 입양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혼전동거 하는 커플을 지원하면 출산율은 올라갈 것이다", "비혼 출산 해서라도 아이를 많이 낳게 해야 한다" 등 여러 말들이 오가지만, 이는 모두 가정의 형태를 무너뜨림으로써 나오는 주장이다. 올바른 주장이 될 수 없다. 좋은 부모가 많이 나올 수도 없으며, 출산율이 올라갈 수도 없다. 가정을 회복시켜야 한다. 사유리 아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하다.

2024-11-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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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를 하나 봤다. 요즘 학교에서 개근상 받으면 "가난해서 여행 못 가니 받는 상"이라 놀림받는다고, 집이나 부모님 차에 따라 아이들 계급도 나뉜다고, 그래서 아기 낳기 싫다고 하는 분의 인터뷰. 그분의 심정 충분히 이해된다. 이러한 학교 상황 당연히 잘못됐고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그분께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 가지는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자녀에게 맞춰주려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고, 그리고 부모인 당신께서 바로 서 있다면 자녀는 절대 엇나가지 않고 정말 멋진 삶을 살아갈 거라고. 내가 경험했던 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30명 정도 되는 우리 반에서 나는 저소득층 가정 3명에 속해 무료 운동화를 받았다. 무려 didi라는 메이커의 운동화였다. 원더걸스의 'Tell me'가 한창 유행했던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Tell me'를 개사하여 노래 불렀다. "텔미 텔미 테테레테테 텔미"가 아니라, "디디 디디 디디릿디디 디디." 나는 그 저소득층 3명에 끼고 싶지 않아 "나는 이 신발 가지고 집에서 바퀴벌레나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때쯤부터 우리 집이 점점 작아졌고, 모든 게 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나를 포함한 소수의 몇 명만 메이커 교복을 못 입는 일이 생겼다. 크게 엇나갈 뻔했던 시기, 나의 어머니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셨다. 그렇게 집에 와서는 밥을 정말 맛있게 차려주셨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꼭 가져주셨다. 그런 와중에 일요일은 교회 유아부 교사로 하루 종일 섬기셨다. 어머니는 늘 감사하는 삶을 사셨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런 삶을 보고 자란 내가 어떻게 멋지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나. 어릴 적 저소득층 가정에 속하며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상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의 나에게 그건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상황과 무관하게 나는 비전을 성취하며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나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기에 열등감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성인 되어 혼자 서울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쉬지 못하며 대학 다닐 때도, 돈 한 푼 없이 대학 졸업 3개월만에 결혼하던 때도, 여전히 가진 게 없음에도 아기를 갖고 싶어하고 실제로 아기가 생겼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때도, 벌써 아기를 더 갖고 싶어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만 받아야 할 축복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축복이 다가가고 있다. 그 축복을 통한 기쁨을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4-09-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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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학교에서 침대는 분명히 ‘가구’라고 배웠건만, TV에서 자꾸 “침대는 과학”이라 하니 어느덧 우리의 머릿속에 ‘침대는?’ 하면 ‘과학’부터 무의식적으로 생각난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학교 교육보다도 TV 광고라는 하나의 문화가 더 큰 힘을 가지기도 함을 보여준다. 청소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영역인 교육과 문화.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교육도 우리가 바로 세워야 하지만 문화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그럼 대한민국의 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TV, 언론, 스마트폰 등 여러 미디어에서 나오는 글과 영상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선한 문화를 전하고 선한 무의식을 심어주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문화의 생산자가 되어 좋은 글과 영상을 퍼뜨릴 사람도 필요하고, 악한 문화를 보고 비판하거나 선한 문화를 보고 띄워줄 논객도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좁은 의미의 문화’다. 그런데 이것이 변화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천만 영화, 국민 가수, 베스트셀러 등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며 미디어에서 큰 문화 권력을 가진 인물 혹은 작품에 악한 세계관이 이미 많이 녹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 이를 바꾸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 변화의 시간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더 두드리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지만, 이것만을 기다리며 당장 악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다음 세대를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에 우리는 이 시대에 ‘넓은 의미의 문화’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당신의 삶을 통해 영향받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신은 문화가 된다.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좁은 의미의 문화가 너무 악하다 탓만 하지 말고 나부터 잘 살아야 한다. 이로써 내가 지켜야 할 가정, 나의 이웃, 나의 직장 등을 먼저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된다면, 좁은 의미의 문화가 아무리 악하다 한들 그로부터 다음 세대를 지킬 수 있다. 천만 영화의 영향력이 아무리 커 보여도 가정(Family)의 영향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저출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특히 중요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복지 정책만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더 그렇다. 돈이 정말 많아도 결혼 안 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별로 없어도 결혼하고 아기 잘 낳으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돈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결국에는 국민 전반적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진짜 바뀌어야 하는 건 문화다. 복지 정책이 기혼자들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것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결혼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또한, 애초에 결혼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퍼진 상황에 복지 정책만 생각하는 건 돈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결혼과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 맞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동기가 그 사람이 겪어온 어떤 문화에 의한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하는 건, 현재 청년들 부모 세대의 높은 이혼율이다. 깨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고, 그 아이들이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안 살래!’ 하며 가정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 자신이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자 하는 꿈이 사라진 것을 봐야 한다. 깨진 가정이라는 문화가 청년들에게 스며들었고 이로써 청년들이 무의식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미디어에서는 비혼, 페미니즘 등을 미화하고 있으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디어를 보고 분별하는 것과 함께, 우리는 다음 세대의 상처를 씻어줘야 한다. ‘결혼해봐야 우리 부모님처럼 사는 것 아닌가?’, ‘아기 낳아봐야 나 같은 애 또 태어나는 것 아닌가?’ 하며 삶을 회피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먼저 내가 좋은 가정을 꾸리고 좋은 배우자이자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가정에 대한 소망이 사라진 이들에게 소망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당신이 어느 환경에서 자라왔든, 당신은 배우자로서 또 부모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으며 당신은 사랑받기 합당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너무 먼 곳에서 찾지 마시라. “저 친구는 비싼 아파트 살고 비싼 차 타고 다닌다”라고? 당신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면, 이처럼 남과 비교하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남과 비교할 필요 없는, 열등감도 우월감도 가질 필요 없는 행복이 바로 여기 있다. 당신 바로 옆에 있다.

2024-09-13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