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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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도시 여행을 다녀와서 사람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100개 도시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 처음에는 어느 곳을 대답해야 할 지 몰랐는데, 시간이 점차 지나고 지금에서야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또렷이 기억에 남는 여행지, 그곳이 아마 가장 좋았던 도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행지로 쉽게 떠올리기에는 생소한 국가일 수 있는 인도네시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시는 '발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숨어있는 인도네시아의 소도시에서 진정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활화산을 처음 보았다, 수라바야 인도네시아를 가장 아름다웠던 국가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활화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백두산, 한라산 정도의 휴화산이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화산을 실제로 보는 느낌은 휴화산의 풍경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활화산'을 처음 봤을 때 그 경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삭막함과 광활함 그리고 활화산이 만들어내는 지형의 오묘함까지, 특히 수라바야의 브로모화산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은 여행이 끝난 지금에도 ‘활화산’이라는 이름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도시 수라바야이지만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실제로는 굉장히 큰 도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의 느낌을 가진 도시가 아닐까? 그러나 아직은 낯설기만 한 도시 수라바야에서 우리는 어떤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한국 여행 사이트에는 수라바야 지역을 치면 나오는 투어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럴 때 솔루션은 구글! 구글에서 'Surabaya trip'을 검색하면 나오는 투어는 단 하나, 브로모화산 투어였다. 가격은 한화로 인당 65,000원(750,000IDR)이었다. 예약하기 전에 고민이 많았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출발해서 밤 10시쯤 수라바야에 도착하는데 일정 상 브로모화산 투어를 하려면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만 내려두고 출발해야 정해진 체류 일정 내에 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도시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빠듯한 일정임에도 나는 이미 브로모화산 사진을 본 후 이미 넋이 나가 있었던 지라 '여긴 꼭 가야해'라며 맏언니의 권력 아래 모두를 설득했다. 아침에 베트남에서 출발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하여 드디어 밤 10시에 수라바야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문이 딱 열렸는데 우리의 현지 가이드 미스터 밤방(Mr.Bambang)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굉장히 선하고 착하고 웃는 모습이 밝은 사람이었다. 다행히 좋은 가이드를 만나 짐을 재빠르게 호텔에 가져다 둔 후 자정부터 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수라바야에서 브로모 화산까지 편도 3시간 길을 이동했고, 브로모화산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보기 위해 인근에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이라고 칭하지만 고도가 높고 산길이 험해서 사륜구동 집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도착해보니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여행지이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인 것 같았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이른 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에, 얼마나 아름다운 뷰일지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었다. 고도가 높아서 이러다가 동사할 수도 있다는 위협감이 들정도로 추웠다. 여름 계절의 국가만 다녔기 때문에 따뜻한 옷도 없을 뿐 더러 챙겨 입은 긴바지 마저 통풍이 너무 잘되서 바람이 불 수록 더 추웠다. 생명의 위협을 참지 못하고 털모자와 장갑을 샀다. 고백아시아 여행에서 털모자를 쓸 정도로 추운 곳에 오다니, 어쩌면 너무 추워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브로모화산을 잊을 수 없는 것일 수 있겠다. 동사할 수도 있겠다는 위협감에 가격비교도 안해보고 앞에 있던 판매상에게 한화 1,600원 (20,000IDR)을 주고 냉큼 털모자를 구매했는데, 조금 더 올라가보니 2배나 바가지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그 때 안 샀으면 얼어 죽었을 수 있으니 생명 수당으로 더 얹어줬다고 생각해야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혹한을 뚫고 난간에 매달려 기다린 일출은 기대만큼 아름다웠다. 불타오르는 빨간 해가 떠오르는 모습, 새벽부터 춥다고 다들 손을 호호 불며 이 자리에 나와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집차를 타고 브로모 화산 쪽으로 향했다. 화산과 화산 사이를 집차를 타고 달리는데, 화산재와 모래 바람이 일어나는 모습이 카우보이 영화 속에 등장할 듯한 장면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었다. 집차에서 내려서 보았던 활화산의 전경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보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브로모화산 앞까지 말을 타고 갔다. 트렉킹이라면 정말 힘들었을텐데, 내 힘을 들이지 않고 승마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이색적인 경험에서 브로모화산에 한번 더 마음이 빼앗기고 말았다. 활화산 바로 앞에 내려서 계단은 직접 올라갔다. 화산 봉우리에서 용암 분화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연기가 나고 계란이 썩은 듯한 유황냄새가 올라온다. 분화구는 깊디 깊은 암흑같이 끝없어 보였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2-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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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 맛집 천국, 스리랑카 스리랑카는 콜롬보도 좋지만, 사실 남부로 내려가야 관광할 거리들이 더 많다. 남부 바다는 서핑 성지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시기가 맞으면 스킨스쿠버하다가도 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눈 앞에 어마 어마하게 큰 고래가 있을 것을 상상하니 어린 시절 보던 만화가 실제가 될 수 있었을 듯하다. 사실 콜롬보에서 본 바다는 칙칙한 색의 해변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부를 여행하지 못한 점이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바다 색은 칙칙할 지라도 스리랑카가 섬나라인 만큼 해산물이 풍부하다. 우버 택시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는데, 일반 도로 위에 판매상들이 왕새우를 흥정해서 팔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뻥튀기 같은 간식류를 팔았을 텐데, 길거리에 파는 새우 치고는 과하게 큰 편의 자이언트 왕새우라니...(?)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여러 판매상이 줄을 잇는다. 가격은 1kg에 13,000원(2,000 루피아) 정도였다. 우버 택시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스리랑카가 참 깨끗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한국보다 깨끗한 것 같다. 바로 옆 나라인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흔히 보던 쓰레기 더미들을 상상했을 때, 확연히 다른 콜롬보 거리의 청결함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함께 여행을 했던 고백친구들 네 명 모두 스리랑카의 독보적인 청결함에 동일하게 놀라워했다. 우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우버 기사님에게 물어보았다. 성은) "스리랑카 거리가 왜 이렇게 깨끗한 거예요? 인도하고 방글라데시하고 다르게 너무 깨끗해요." 기사님) "법으로 통제해서 그래요. 길거리 흡연도 무조건 금지예요. 그래서 담배 꽁초도 거리에 하나도 없는 거예요." 성은) "아 그럼 사람들이 담배를 어디서 펴요?" 기사님) "집에서 피면 되죠, 흡연해도 되는 장소가 따로 있어요. 아무 곳에서 필 수 없어요." 공공 예의범절 문화가 굉장히 선진화되어 있는 이 국가의 모습에 놀라웠다. 솔직히 스리랑카가 인도 옆에 있어서 인도와 환경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문화만이 아니라 스리랑카는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인도와 많이 다르다. 인도는 힌두교 80.5%, 이슬람교 13.4%인 반면에 스리랑카는 불교 70%, 힌두교 12%, 이슬람교 9.7%이다. 대한민국, 일본, 중국이 인근에 위치하지만 서로 문화와 특성이 다른 것처럼 스리랑카, 인도, 방글라데시가 각기 다른 문화의 고유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해산물이 유명한 스리랑카에서 빼놓지 말고 방문해야 할 크랩 맛집! Ministry of Crab (크랩 장관)에 갔다. 워낙 분위기 자체에 고급 느낌이 풀풀 났던 만큼 가격은 각오한 상태였다. 크랩 with 갈릭 칠리 소스 1.5kg가 한화 14만원 선! 전혀 싼 가격이 아니지만 딱 한입 물고 난 깨달았다. 크랩계의 최고봉이었다. 르꼬르동블루 외식 경영학과 전공부터 몸 담기 시작해서 외식 분야에서 12년을 있었던 나의 외식 인생에서 경험했던 크랩 요리 중 가장 맛있었다. 맛집 국가대표 백종원 선생님도 감탄하시고 프랜차이즈 내실 것 같은 맛이었다. 세상에 이런 맛이 가능할 수 있다니! 먹으면서 지속적인 감탄사 연발이었다. 크랩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맛이었다. 매콤한 오일 소스가 알리오올리오 느낌이 나고, 밥 한 그릇 시켜서 소스 한 방울 남지 않을 때까지 비벼 먹고 싶은 맛이었다. 먹다 보면 양손을 사용하게 되어 태초의 인류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양손이 문제일 쏘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크랩의 맛을 뒤로 한 채 식사를 마친 후 크랩 장관님 집에서 나왔다. 조금 걸어가는데 한 쪽 거리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가서 보니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살짝은 흥이 나는 비트에 몇 명의 관객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런 댄스 타임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여행 중 나의 댄스 본능을 일깨운 후 숙소로 돌아갔다. 스리랑카에 오면 가성비 갑인 호텔 뷔페를 꼭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브런치를 먹으러 샹그릴라 호텔 뷔페로 갔다. 한화 20,000원(3,000루피아)에 잠실 롯데 호텔 라센느 정도 퀄리티의 뷔페를 맛볼 수 있었는데 양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고기류는 물론, 돋보이는 디저트 라인 그리고 고퀄리티 베이커리 류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하면 해산물을 빼먹을 수 없는 만큼 그릴 새우도 정말 맛있어서 12마리 째를 가지러 가던 도중, 요리하고 있던 호텔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직원) 저...혹시... 성은) 네? 직원) 어제... 거리에서 춤추셨던 분 아니세요....? 성은) ???????????????????????????!!!!!!!!!!!!!!!!!!!!!!!!!! 아니 이럴 수가! 스리랑카 길거리에서 춤 한 번 췄을 뿐인데, 핵 인싸가 된 것 같은 이 느낌 적인 느낌은 뭐지. 호텔 직원이 나를 봤 다니 밥 먹다가 어딘 가에 숨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하하..." 어색하게 웃고는 내 자리로 뛰어 돌아갔다. 성은) 얘들아, 호텔 직원이 어제 나 춤추는거 봤대 고백친구들) 뭐-어?! 다들 폭소에 박장대소를 금치 못했다. 고백 친구들이 음식을 가지러 갔다가 그 직원이 "너의 친구 춤 잘 추더라"라는 말을 했다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민망해서 더 이상 음식을 뜨러 가지는 못했지만,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식사로서 샹그릴라 호텔 뷔페는 완벽했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1-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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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과 쇼핑을 좋아한다면? 스리랑카 콜롬보로! 고백친구 썽으니의 여행 에세이 인도 옆에 눈물처럼 크게 동떨어져 있는 섬이 바로 스리랑카이며, 그래서 스리랑카의 별명이 인도양의 눈물이다. 일반적으로 '인도'라고 하면 미스테리하고 이국적이면서도 위험한 여행지라는 클리셰가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스리랑카는 인도보다 더 낯선 여행지이기 때문에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꼭 사야하는 3가지를 듣는다면 없던 관심도 생길 것이다. 3가지는 바로 베질루르 티, 노리타케 그릇, 블루 사파이어이다. 상상 이상의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쇼핑으로 여행비 본전까지 챙길 수 있다. 그리고 스리랑카만 다녀오기 아쉽다면 옆에 몰디브를 메인 종착지로 하면서 경유로 1박 2일 다녀오는 여행 코스도 추천한다. 이제, 여행지 스리랑카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스리랑카에서 꼭 사야하는 3가지 세계 3대 홍차 재배국 중 하나가 스리랑카라는 사실! 그만큼 스리랑카의 홍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최근 압구정, 잠실 등지에서 핫한 찻집으로 유명해진 ‘베질루르’도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홍차 브랜드이다. 베질루르 티는 예쁜 틴케이스로 포장되어 선물과 인테리어용으로 인기 만점이다. 오르골 모양도 있고 책모양의 티북(Tea Book)도 시리즈 별로 있다. 한국에서 구매하려고 하면 큰 사이즈 티북은 42,000원, 작은 사이즈는 28,000원인데, 현지에서 구매하면 큰 사이즈가 5,500원 상당(850루피아), 작은 사이즈는 2,800원 상당(450루피아)이었다. 거의 10배가 차이 나기 때문에 티북만 사와도 여행비 본전을 채우는 셈이다. 처음에는 왜 10배나 차이 날까 싶었는데, 소포비도 비싸고 이동에 있어서 틴 케이스가 찌그러질 경우 판매가 어렵기 때문에 수입 리스크를 감수했을 때는 적정가격 선으로 보여 졌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바로 타는 여행객이라면 틴 케이스를 형태 그대로 배송비 걱정없이 가져올 수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두번째는 ‘노리다케’ 그릇이다. ‘노리다케’는 찻잔 한 피스에 1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테이블웨어 브랜드이다. ‘노리다케’는 일본 나고야의 작은 마을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일본 최초의 본차이나 그릇을 완성해낸 브랜드이다. 본차이나(Bone China)는 중국식 자기에서 발전시켜 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하는 영국식 도자기의 형태이며, 견고하고 가벼우면서도 맑은 빛이 도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본차이나의 대표 브랜드로 일컬어지는 노리다케의 공장이 스리랑카에 있다. 때문에 A급 제품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지만 약간 스크래치나거나 문제가 있는 B급 제품의 가격은 더욱 저렴하다. 그러나 B급이라고 해도 일반인이 봤을 때는 A급과 전혀 다른 점을 못 느낄 정도의 차이라고 하니 더욱 매혹적이다. 밥 그릇이 개 당 3-4천원 정도이니 다이소 가격에 최고급 브랜드의 그릇을 살 수 있다는 유혹은 여행객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점이다. 마지막은, 아시아 최대 보석 산지인 스리랑카의 여러 보석 중 최고로 꼽히는 블루 사파이어가 그 주인공이다. 스리랑카는 281그램의 세계 최대 크기 블루스타 사파이어(한화 2천억 상당)가 채굴되었을 정도로 보석이 많이 채굴된다. 특히 스리랑카 남부 라트나푸라는 보석 광산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남부까지 가지 않더라도 콜롬보에서도 품질이 좋은 블루 사파이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하다. 하지만 반지를 맞추기에는 디자인이 올드한 느낌이 있어서 보석 알만 구매한 후 한국에서 후 가공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나 역시 어머니께 드리려고 구매했는데, 3년째 블루 사파이어 알 그대로 서랍 안에 박혀 있다. 반지까지 직접 맞춰드려야 했나 보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0-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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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문지,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하와이 전경을 볼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 헤드 다이아몬드 헤드는 화산 활동이 끝난 사화산으로 중앙에 큰 화구가 있으며, 미 육군의 요새로 입장 시간이 제한되어져 있다. 산 이름은 꼭대기의 암석들이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여 보인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와이를 이미 다녀간 친구가 이곳을 꼭 가보라고 추천에 추천을 거듭해서 일정에 넣긴 했는데, 막상 가보니 오르면서 왜 여길 오자고 했나 후회 막심이었다. 가파르진 않지만 산 등반 트레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한 것이니 올라가긴 올라가는데 어느 세월에 꼭대기까지 오르나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 한 번 딱 감고, 조금만 더 힘내서 올라가면 세상 아름다운 와이키키의 절경의 볼 수 있다. 친구가 왜 이곳을 꼭 가보라고 추천했는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맞아, 하와이에 왔다면 다이아몬드 헤드는 꼭 와봐야 할 것 같아.' 오르는 중간에는 땀도 뻘뻘 나고 굉장히 더웠는데, 뷰 포인트에 올라가니 시원하게 부는 바람의 느낌도 마음을 간지럽히는듯 좋았다. 내려와서 마시는 파인애플 생과일 쥬스 한 잔까지, 하와이 여행의 마침표로 완벽했던 여행지였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0-1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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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방문지, 와이키키 해변 워낙 명성이 자자한 여행지들에 대해서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한 적이 많아서, 하와이에 올 때도 내심 걱정이 많았다. 특히 와이키키 해변가처럼 유명한 바닷가는 사람이 몰리는 법이고,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는 그 아름다움도 많이 사그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와이키키에 대한 기대는 갖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고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어우러져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바다 따로, 사람 따로’가 아니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해변이었던 것이다. 서핑보드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 돗자리를 펴 놓고 해변가를 바라보며 일광욕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들, 수건을 두른 할아버지가 비치 체어에 앉아있는 모습까지. 와이키키 해변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들이 만들어 냈다. 와이키키 해변가는 명성에 맞게, 아니 명성보다 더 아름다운 하와이의 대표 해변가였다. 네번째 방문지, 스노쿨링 명소로 손꼽히는 하나우마 베이 하나우마 베이는 1967년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수중 공원이기 때문에, 입장 후 15분 간 자연 보호에 대한 시청각 교육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매주 화요일이 휴무로 지정되어 있어 수중 생태계가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재생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둔다. 하나우마 베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수요일 아침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화요일, 바다가 쉬고 난 후라 물고기들도 안심하고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운영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입장료는 7.5달러인데, 오전 6시부터 7시 사이에 오면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인산인해를 최대한 피해 스노쿨링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일찍 출발했다. 오전 6시에 입장하려면 오전 5시 반에는 우버를 타고 출발해야 했다. 스노쿨링 장비는 월마트에서 구매했다. 물론 빌릴 수도 있지만 2명이 빌리는 가격이라면 그냥 하나를 사서 번갈아 가면서 착용하는 가격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벼 출발했지만, 이내 더 이상 졸리지 않았다. 하나우마 베이를 가는데 차 안에서 보이는 Sunrise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찰칵 찰칵 찰칵" 우리 넷 모두 그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4시간 365일 아름다운 곳이 이곳, 미국 하와이였다. 딱 도착하자 마자 이게 웬일! 내 눈 앞에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전 세계적으로 1,500마리 정도만 남은 멸종위기 종인 몽크 물범이었다. 가끔 울어서 좀 무섭긴 했는데, 한 편으로는 너무 귀여웠다. 물범이라니! 내가 물범을 보고 있다니! 눈을 비비면서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몽크 물범과 똑같은 포즈로 누워서 사진도 찍고, 몽크 물범 주위를 돌아다닐 때마다 물범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데 어쩜 이리 귀여운지! 사랑해 물범아.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0-1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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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에서 꼭 가야할 여행지 TOP5 두번째 방문지, 거북이와의 프라이빗 비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Hale'iwa beach park 거북이가 나타나는 해변으로 Hale'iwa beach park와 라니아케아 비치를 들 수 있는데 라니아케아 비치는 너무 유명한 관광지이다보니 거북이에게 가까이 못 가게 줄을 그려 놓고 지키고 서있는 관리인도 있으며 사진 찍으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Hale'iwa beach park는 한적해서 사람도 별로 없고 둘러보기만 해도 거북이가 바다 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거북이와 프라이빗 비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천상의 장소였다. 거북이들은 해변가로 올라오려고 열심히 양발을 첨벙첨벙 헤엄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바다에 바로 입수했다. 그런데 바다에 돌들도 너무 많고 법적으로 거북이를 만지면 안되서 조심스레 투샷을 찍으려다 보니 앵글이 잘 나오지 않았다. 실패를 계속하던 찰나, 나의 이런 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던지 멀리 있던 일본인 여성 분이 나에게 오더니 저쪽으로 가면 거북이가 자고 있으니 가서 찍으라고 알려주었다.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내 눈앞 거북이에 홀려 해변가 전체를 둘러볼 생각을 미쳐 못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말씀해주신 곳으로 뛰어가니 너무나 귀여운 대왕 거북이가 쿨쿨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 크기의 몸집과 근엄한 자태면 신라시대 때 태어난 할아버지 거북이 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 때나 간다고 거북이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절 별로 다르기는 하겠지만, 오후 3시 30분 정도부터 저녁 6시 정도 까지 거북이가 꾸준히 해변가로 올라온다. 나도 오후 3시 30분에는 Hale'iwa beach park에서 거북이와 만났고 저녁 5시 30분에는 라니아케아 비치를 가서 거북이와 재회하였다. 꼭 시간을 맞춰서 방문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라니아케아 비치 인근에 꼭 방문해야 할 맛집 두 곳이 있다. 첫번째는 마츠모토 쉐이브 아이스(Matsumoto Shave Ice)라고 빙수에 레인보우 시럽을 뿌려서 먹는 아이스크림 집이다.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 한데, 맛은 꼭 불량식품 먹는 것 같고 엄청 맛있지는 않았으나 오바마 대통령의 최애 맛집이라고 하니 우리도 관광객으로서 한 번쯤 가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무감이 들어서 방문했다. 하지만 어린시절 문방구에 팔던 색소 가득한 불량식품 맛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쉐이브 아이스의 맛에 취해서 매니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보통은 아이스크림을 빙수 위에다가 얹는 집들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얼음 속'에 쫀득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향이 하와이 호놀룰루이며, 마츠모토 쉐이브 아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학창시절 굉장히 자주 방문했던 맛집이어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하와이에 올 때면 꼭 들렸다고 하며,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정상 들리기 어려울 때에는 비서를 통해 구입해서 비행기에서 전달받아서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마츠모토 쉐이브 아이스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맛이 아닐까? 두번째는 하와이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새우푸드트럭 맛집 Fumi's kahuku shrimp이다. 물론 새우푸드트럭 맛집으로 꼽히는 여러 곳이 있지만 위생이나 평판 리뷰를 철저히 검색한 후 선정한 맛집이었다. 원래 유명한 곳은 주인이 바뀐 후 맛이 짜졌다고 해서 이곳으로 선택했다. ‘맛이 완전 상상 이상으로 Fabulous해!’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음식 자체의 맛도 괜찮았고, 옆에 지는 노을의 분위기가 새우의 맛을 더 돋워 주었다. 이 정도 퀄리티에 이 정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새우 푸드트럭이라면 다음에 하와이를 올 때도 들려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음식점이었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10-0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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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에서 꼭 가야할 여행지 하와이는 카우아이,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본섬)라는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우리가 '하와이 여행'간다고 말할 때 지칭하는 섬은 대부분 오아후를 일컫는다. 가장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 돌 플랜테이션 농장, 다이아몬드 헤드 등 주요 관광지는 오아후 섬 내에 있다. 첫번째 방문지, 돌 플랜테이션 농장 우선 돌 플랜테이션 농장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Dole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파인애플 농장이다. 로고를 보면 '아, 이 브랜드!'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주로 바나나 혹은 파인애플을 공급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파인애플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볼 수 있고 돌 농장에서 재배한 싱싱한 파인애플과 그 파인애플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꼭 먹어봐야 할 필수코스 중 하나다. 파인애플과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둘 다 달달할 줄 알았는데 아이셔처럼 무척이나 셨다. 자연의 맛이랄까? 그리고 미국의 스케일 답게 아이스크림 양도 어마 무시하게 많았는데, 신 맛을 그렇게 잘 먹는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함께 9개월 간 여행했던 고백친구들과 함께 나눠먹었다면 딱 좋았을 텐데 혼자 와서 추억을 공유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테마파크 같은 분위기로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이 방문하는 코스이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09-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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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는 담배인가? 마약인가? 꽁야(Kunya) <사진 14 – 거리 곳곳에서 꽁야를 만들고 있는 좌판> 미얀마 길거리에는 빨간색 핏자국이 많이 보인다. 사실 핏자국은 아니고 미얀마인의 씹는 담배라고 불리는 꽁야를 하고 나서 거리에 뱉기 때문에 생기는 자국들이다. 잎 뒷면에 석회를 바르고 빨간 꽁 열매를 비롯해 여러가지 씨앗과 첨가물을 집어넣고 쌈을 싸서 판매하는데 일종의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열매도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담배처럼 중독이 되고 남성, 여성할 것없이 꽁야를 많이 씹는데 가정집을 방문하면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을 정도로 일반적인 문화이다. 하지만 꽁야를 하게 되면 석회가 체내에 쌓이게 되고 치아 건강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게 된다. 꽁야 쌈을 넣고 씹은 후 고이는 물을 삼키지 않고 모았다가 한 번에 뱉는 방식으로 꽁야를 씹는데, 꽁 열매가 붉은색 물을 내기 때문에 처음 보면 피를 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치아가 꽁야로 인해 검게 썩어가고 붉게 착색되어 치아가 몹시 손상된 상태에 있어도 치료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를 갖지 못한다고 하셨다. 때문에 선교사님이 미얀마인들을 위해 100%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는 치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안 온다고 하셨다. 아파도 본인이 아픈 건지 모르고, 치료받을 수 있는데도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 슬프게 다가왔다. 당장 벌어먹고 사는 삶도 가능할 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그 외의 것에 대한 생각의 확장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이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병원 앞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보였다. 내가 다가가니까 신기해 보였는지 해맑게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 선교사님께 미얀마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듣고 나니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초콜릿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 것이고, 밥 한 끼 걱정없이 마음껏 해결할 수 있을까? 공부하고 싶다는 꿈 자체를 갖는 것이 이들에게 가능한 일일까? 아이들과 인사를 한 후 뒤돌아서 한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9개월 간 떠난 여행에서 미국, 호주, 일본처럼 선진국들도 있었지만 빈곤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오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평소 나의 삶에서 느꼈던 고통들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적어도 나는 꿈을 꿀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획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일상이 되어버려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던 삶의 부분들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내게 주어진 축복들을 나누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 같았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처럼 식민지 시대 때 일본으로부터 민족 말살 정책에 희생양이 될 때도 있었다. 남의 일이 아니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장사리'라는 6.25전쟁에 관한 영화를 보았는데, 비록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우리 민족은 분명 그 참담한 전쟁의 시대를 겪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참혹함과 생사를 오가는 공포 앞에서 나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여러 국가들은 본인 국가의 이익에 따른 정치적인 입장을 취했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 오신 선교사님들은 이화, 연세 학당들을 통해 평민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병원이 없어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본국에서 기부금을 모아 병원을 짓고 무료로 치료했다는 사실은 연세 세브란스 병원 및 다수의 기독교 기반 병원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6.25 전쟁 때 UN 연합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한국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미얀마 유치원> <한국어 학당 교실> <후원금을 통해 미얀마 학생들에게 한국으로 유학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나라도 불쌍한 사람이 많은데, 왜 해외 가서 돕느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어려웠을 때 어느 땅에 있는 누군가는 우리를 도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땅에도 분명 가난한 사람이 존재했고, 타국의 군인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을 도왔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것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시대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던 극 빈민국 이었던 대한민국이 지금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많은 사람의 섬김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9개월 간의 긴 여정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나의 삶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세상을 둘러봐야 겠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겼다. 삶의 이유가 새로이 생겼다. 남들과 비교하며 얻는 '나의 성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가 더해질 수록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내게 주어진 감사한 환경에 대한 책임이라고 느낀다. 청년 세브란스가 1904년 그 시절에 병원 설립 자금 15,000달러를 기부했던 것처럼, 필요한 곳에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09-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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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남자들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 무거운 정치 이슈에서 벗어나 미얀마의 문화로 이야기를 옮겨보자. 미얀마에 가면 남자들이 긴 치마를 입고 다닌다. 이 치마의 이름은 '론지'인데 미얀마 전통의상이다. 원래는 안에 팬티도 안입고 다닌다고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팬티와 짧은 반바지 정도는 안에 입고 론지를 걸친다고 한다. 전통의상이라고는 하나 현지인 10명 중 5-6명은 론지를 입고 있기 때문에 거의 일상복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옷이라기 보다는 원통형의 천이고 허리춤을 둥그렇게 말아서 본인 사이즈에 맞게 고정시키는 형태로 입는다. 쉐다곤 파고다 같은 미얀마 불교 사원에서는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나 스커트를 입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입구에서 론지를 빌려주기도 한다. 미얀마의 선크림, 타나카 내 인생에 처음 더위를 먹은 곳이 양곤이었다. 처음에는 몸살기인 줄 알았는데 온몸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고, 결국 샤워하다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10분 동안 화장실에 쓰러져 누워있었다. 더위를 먹으면 진짜 누가 스치기만 해도 정말 온 몸이 소스라치게 아프고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온다는 것을 미얀마에서 처음 깨달았다. 그만큼 양곤의 햇빛은 굉장히 쌨고 더웠다. 이러한 미얀마의 날씨 속에서 미얀마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얼굴에 바르고 다니는 하얀 진흙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타나카이다. 타나카 나무를 돌에 갈아 물에 희석시켜 바르는 미얀마의 천연화장품 겸 자외선 차단제이다. 다양한 모양으로 얼굴에 바르기도 하는데, 특히 여성들은 거의 100%의 확률로 모두 타나카를 바르고 있었다. '나도 한 번 발라보고 싶은데...' 어떤 것이든 그 나라에 가면 특이한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나의 성격 상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타나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뭐라고 설명 해야 할까? 어디를 가야 팔까?' 궁금하지만 말도 안통하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도중 여행 정보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영어로 엄청 잘 설명을 해주시는 직원 분을 만났다. 그 분도 얼굴에 바르고 계시길래, 얼굴에 바른 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타나카' 라고 말해주시면서 갑자기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고체의 무언가를 물에 막 푸시더니 얼굴에 발라 주셨다. 얼굴이 갑자기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슈퍼에 일상 아이템처럼 판다고 말씀해 주셨다. 슈퍼를 가서 직원에게 "타나카 타나카"하면서 타나카가 발라져 있는 내 얼굴을 가리켰더니 타나카 통 앞으로 인도해 주셨다. 양이 많나 싶었지만 ‘미얀마에서 매일 바르고 다니자’ 라는 모토로 통 크게 구매했다. 얼굴에 낙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미얀마에서의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08-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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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여사 교과서에서 이름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아온 분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얀마 여행에서 방문한 모든 가게에 하나같이 그녀 사진이 붙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찾아보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 나라로 치자면 대통령 사진을 떡하니 가게 대문 혹은 집 안에 붙여 놓는 모습일 텐데, 쉽게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강요에 의해 김정일과 김정은 사진을 모든 장소에 걸어 놓는다고 하지만, 이미 민주화된 국가인 미얀마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본인 가게와 집에 붙인 사진이라면 미얀마 국민에게 아웅산 수지 여사라는 인물이 주는 의미는 실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의미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웅산 수지 여사가 어떤 사건들을 통해 국민적 영웅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아웅산 수지 여사는 식민지 시대 때 영국으로부터 미얀마의 독립을 이끌어낸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아웅산 장군은 우리나라의 김구선생님처럼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인이었으나 독립 이후 민주 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이 일로 인해 아웅산 수지는 15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중에 영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영국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이 아웅산 장군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하던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이름을 고치고 새 정부를 수립하였는데, 폐쇄적인 외교 정책, 소수민족 억압, 타 종교 탄압, 기이한 화폐 정책 실행으로 인해 본디 산림자원과 지하자원이 풍부하던 미얀마 땅에 깊은 빈곤이 자리잡았다. 미얀마 내의 대부분의 사업이 군부와 그 자녀들이 모두 독점하고 있는 형태로 사유재산화 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 까지만 해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던 아웅산 수지는 어머니의 간병 차 잠시 미얀마에 오게 되는데, 이때 미얀마 민주화 시위 (8888시위)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1988년 8월 8일 8시에 일어난 이 시위에 아웅산 수지는 감명을 받고 미얀마의 민주화에 몸담아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국민적 영웅이었던 아웅산 장군의 딸이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으나 군부 독재 정권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택연금, 정치인 탄압 등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에 앞장섰다고 하여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계속된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 가운데 2016년 드디어 독재 정권에서 선거결과에 승복하기로 했고 아웅산 수지는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미얀마 헌법 상 직계가족 중에 외국인이 있는 수지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측근인 틴쩌를 대통령에 세우고 실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어마 어마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에 대해 이제와서 국제 사회가 등을 돌려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미얀마에서 '인종 청소' 논란이 일어났다. 이슬람교를 가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미얀마의 불교도들에 의해 대량 학살되고 있는데 실질적인 국가원수인 아웅산 수지가 눈감고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인종청소사태를 묵인하는 수지의 소극적 태도는 불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어렵게 잡은 정권을 다시 놓칠 까봐 취하는 태도가 아니냐며 국제 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조성되었다. 아웅산 수지에게 수여되었던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권상들이 박탈되었으며, UN은 로힝야를 위한 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아웅산 수지는 인도적 해결을 약속했으나 이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언행이 일치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에디터 - 주성은 (여행 크리에이터 / 썽으니 랜선여행 유튜브)

2025-06-29 18:16